프로젝트를 시작하며2011. 11. 11. 20:12



'하늘 감옥'에 갇혀 자그마치 309일을 버텨온 김진숙 지도위원이.... 드디어 내려왔습니다.

하루하루, 저 높은 곳의 사투를 바라보며 모두가 걱정했던 309일이기도 했지요.

뭐라도 해보자는, 뭐라도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85개의 아카이브> 작업을 이어지게 했습니다.

여러 사진가들, 또 네티즌께서 선뜻 이 프로젝트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동안 이 블로그를 통해, 또 오마이뉴스를 통해 연재된 <85개의 85> 이야기는 김진숙 지도위원과 <희망버스> 탑승객, 우리사회 노동의 풍경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들께 보내는 작은 응원의 몸짓이었습니다.

이제,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85개의 이야기가 모두 모인 것은 아니지만, 나머지 이야기들은 저마다의 삶 속에서 상상과 실천으로 이어지리라 기대합니다.

오마이뉴스 연재를 통해 아주 적은 원고료가 쌓였습니다.
애초 85호 크레인과 그 주위에서 연대투쟁을 하는 분들께 닭튀김 몇 상자라도 보낼까 했던 것인데, 한진사태가 일단락 된 지금, 그곳보다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가족의 상처를 "와락" 껴안으려는 <심리치유 공간, 와락>에 작은 보탬을 드릴까 합니다. 우리의 기억에서 자꾸만 잊혀지려는 쌍용차 사태는, 무분별한 정리해고가 왜 ‘살인해고’일 수밖에 없는지를 19번째 죽음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 상처를 보듬으려는 ‘와락’(
http://thewarak.com)에 따뜻한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십시오.

이번 아카이브작업이 누군가에겐 새로운 작업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부산외대 이광수 교수께서는 이번 아카이브 작업을 계기로 <미친 등록금, 미친 알바>에 관한 85개의 작업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알려오셨습니다. 미친듯 널뛰는 등록금으로 인한 제자들의 고통과 저임금 비정규노동의 굴레에 대해 많은 고민과 반성을 하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합니다. 의미로운 작업을 기대해 봅니다.

이름을 따로 밝히지 않은 이 청년들의 낮은 목소리는 “저 팔십오호 크레인의 사투가, 김진숙의 크레인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이별 인사들 드립니다.
거듭, 고마움의 인사를 올립니다!!

 


 

Posted by 싫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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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태훈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따뜻한 겨울보내세요.

    2011.12.01 20:26 [ ADDR : EDIT/ DEL : REPLY ]

85개의 852011. 11. 11. 19:06



시험 기간이 되면 아주 불안해집니다. 전 오로지 장학금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가구점 점원이시고, 그런데 가구점에서 4대보험료 안 내려고, 노동부에 신고를 안 해주는 바람에 국가로부터 당연히 누려야 할 보장을 아무 것도 받지 못합니다. 형식상으로는 무직이지요. 어머니는 대학에서 청소 일 하십니다. 그 대학에서 청소일 하시는 분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며칠 전에 그거 빨갱이 아니냐고 전화를 하셨습니다. 펄쩍 뛰면서 자세한 설명을 해드렸습니다만, 그렇다고 나서서 하시라는 말씀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그 고생을 하시면서 알바보다는 장학금이 남는 장사이니 무조건 장학금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선택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학과 공부, 학점, 장학금 이거밖에 없습니다. 주변에선 추물이라고, 속물이라고 빈정대기도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앞에 두고 낭만이니 젊어 고생이니 하는 건 허망한 관념론입니다. 다만 스스로 안타까운 것은 있지요. 아무래도 학점 잘 주는 과목을 주로 택하는 겁니다.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괴롭습니다. 어렵고 힘든 과목 공부하고 싶어도 전 장학금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해결하고, 생활비는 돈을 거의 안 쓰고 사는 방식으로 해결합니다. 학교 기숙사에 살았는데, 기숙사 비용도 너무 비쌉니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장사하는 거 같아요. 복지의 일부로 생각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친구랑 둘이 밖에 나가서 자취합니다. 그게 더 싸게 칩니다. 생활비는 대외 자원 활동 같은 걸 해서 조금씩 모아 해결합니다. 부산시나 각 구청에서 주관하는 여러 행사나 축제 같은 것에 자원 봉사 요원으로 가서 일하는 겁니다. 그런 게 주변에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일당으로 활동비를 3~4만원 주거든요. 그거 모아서 생활비 쓰면 됩니다. 이젠 경력으로 인정 해주기도 해서 좋은 행사에 운영 요원으로 참여할 수 있기까지 되었습니다. 주로 주말에 하는 거라 공부에 그렇게 방해되지는 않습니다. 그런 활동 하면 캐리어에도 도움 되고, 실제로 배우는 것도 많고 해서 만족스럽습니다. 알바는 시간만 뺏기고, 노동력 착취 당하는 거 같아서 안 할 생각입니다. 교수님 아시디시피 제가 운동권 동아리 활동을 하쟎아요. 그 쪽에서 자꾸 총학생회장 출마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공부가 곧 삶과의 싸움입니다. 장학금 받지 못하고, 취업 못하면 삶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6년 만에 졸업을 하게 되네요. 아시다시피, 2년을 휴학했으니까 친구들에 비해 2년이 늦는 셈이지요. 그래도 제가 번 돈으로 학교를 마칠 수 있어서 뿌듯합니다. 좋은 기회가 있어서 다음 달엔 일본 후쿠오카 어떤 병원 복지센타에 인턴으로 갑니다. 석 달 정도 하고 나면 그곳에서 취업을 하는 걸로 되어 있어요. 제가 2년 휴학하는 동안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땄거든요. 치과에서 일하면서 땄습니다. 복수 전공으로 사회복지학 한 것도 그런 계획에서 했던 거구요. 아버지가 안 계셔서, 엄마가 친척 분 식당에서 일 하시면서 번 돈으로는 생활비나 간신이 될 정도였습니다. 제 밑으로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 둘이 있어요. 막내는 아직 많이 어리니 돈 들 일이 별로 없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만, 바로 밑에 동생은 제가 방학 때마다 종일 일 해서 번 돈으로 학비 내고 학용품 사주고 그랬습니다. 집을 옮길 일이 생겼엇는데, 2년 휴학 했을 때 번 돈으로 집 보증금도 내고, 살림 살이 비용도 다 냈습니다. 그나마 병원에서 일 했던 게 월급이 괜챦아서 도움이 되었던 거지요. 언젠가 골프장에서 일 자리가 있다 해서 갔는데, 캐디를 하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일정 기간 돈을 내고 기술을 배워야 하는데다가, 배우고 나도 장래성이 별로 없을 거 같아서 그냥 안 했습니다. 피자 가게에서 일을 할 땝니다. 손님 없으면 쉬라고 하면서 그 시간은 일 하는 것으로 쳐주질 않는 겁니다. 손님이 없을 땐 그냥 들어가라고 하구요. 돈 주기 싫어서지요. 시급 4500원 정도 주는데 그렇게 인정머리 없이 일을 시킵니다. 정말 잔인한 사회예요. 그 때는 제가 휴학 하기 전이어서, 그만 두고 싶어도 그만 둘 수가 없었어요. 알바를 용돈 벌이 정도로 하는 아이들은 심사가 틀어지거나 자존심 상하면 그만 두는 경우가 있는데 전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땐 할아버지니까지 같이 살던 때였거든요. 대학생 보금자리 라고 정부에서 저같이 가난한 대학생들에게 살 집을 싸게 빌려주는 게 있어요.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2만 원 정도 내는 겁니다. 그런데 한부모 가족이면 우선 순위를 받는다 해서 그나마 다행이구나 싶어 신청했는데, 자녀 중에 스무 살이 넘는 사람이 있으면 해당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가 이미 스무 살이 넘었으니 해당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럼 제 동생들도 안 된다는 거 아닙니까? 나이만 스무 살이지 돈을 못 버는 대학생인데 ... 억울하고 속 상해요. 다행이 신청자가 많지 않아, 들어가서 살곤 있지만 ... 국가에서 보편적 복지를 더 확대 했으면 합니다, 그런 게 언제 되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전 12월이면 작은 희망에 부풀어 오를 겁니다. 일본 가면 몸 조심 하라구요? 여기서도 안전하게 살았는데요, 뭘.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들어 오기 전까지 한참 쉬었습니다. 군 제대 후에 본격적으로 사회에 뛰어들어 쓴 맛 단 맛 다 봤습니다. 운전 하기를 좋아해서 그 쪽으로 일을 찾아봤는데, 그 운전한다는 게 대부분 인생 막장 일로 연결되더라구요. 다방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속칭 오봉이라 하는 - 왜 오봉이라 부르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아가씨를 차로 날라다 주는 일을 몇 달 간 했습니다. 소위 티켓 손님 끊으러 가는 거지요. 같이 일을 하던 사람들이 우리끼리 따로 보도방을 한 번 차리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의기투합 했습니다. 그러다 성사 직전까지 갔는데... 저는 그냥 나왔습니다. 인생을 그렇게 사는 것이 불안하고 두려워서였습니다. 룸싸롱에서도 일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엄청 비싼 데라 30대는 받지 않을 정도였지요. 손님들이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이백이 넘어가는 술 값에 도망가는 경우가 많앗습니다. 제가 하던 일은 그 사람들을 쫓아가서 잡아다 사장에게 인계해주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손님이 끌려 오며 제 바지에 오줌을 주루룩 싸면서 "이런 밑 바닥 인생 더 이상 살지 마라"고 하는 말에 순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는 일념에 '하류 인생'이나 더러운 '밑바닥 인생'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었는데...제가 무슨 죄 지은 일 한 것도 아니고, 자기가 도망 갔으면서 ... 그렇지만, 그 뒤로 마음 먹고 대학에 들어 가려 공부했습니다. 아버지는 바로 직장 잡을 수 잇는 전문대를 가라 하셨지만, 전 4년제에 가고 싶었습니다. 사회 밑바닥 생활을 겪어본 후 스물여섯이 되어 대학에 들어오니 그냥 모든 게 다 좋았습니다. 어린 동생들은 이런저런 불만을 하는데, 그 나이 땐 이 대학 생활이라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전 지금 3학년인데 지금까지 등록금 전부 다 대출받아서 냈습니다. 빚이 2000만 원 넘게 있지만, 졸업 하고 취업해서 조금씩 갚을 겁니다. 대학 등록금이 비싸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대출 제도가 있어서 전 좋습니다. 방학 중에 하루 12시간 죽어라 일 해도 등록금은 못 법니다. 그래서 전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하고, 등록금 대출받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중산층의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쩐지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막연하기도 하고, 우리 같이 돈 없는 사람들한테는 어려운 일이기도 하겠지만요. 빚을 지고 사회에 나가게 되어 큰 부담이 되지만, 언제 저희 같은 사람들이 그런 빚 없이 산 적이 있었던가요? 열심히 해서 빚도 갚고, 중산층으로 들어가기도 해야지요. 그래도 아직은 희망입니다.



동생이 대학을 아무도 몰래 그만 둬버렸어요. 저하고 연년생 남동생인데. 그리고 군대 가버렸어요. 군대 가고 난 뒤에서야 알았어요. 집안이 발칵 뒤집혀 버렸지요. 나중에 들어보니 그 대학에서 배운 것도 별로 없고, 등록금만 비싸고, 집안은 어렵고 해서 그만 뒀다네요. 지금은 군 제대 해서 그냥 엄마 토스트 가게 하시는 거 도와주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엄마랑 같이 토스트 가게 하셨는데, 몸도 안 좋으시고...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으시다 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셔서 농사 지으십니다. 귀농이지요. 귀농이라면 낭만적으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막노동이 아니지요. 마음은 편하시다고 하십디다만...알바는 여자 대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을 겁니다. 지금 현재는 학교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알바지요, 아주 편한 알바요. 제가 몇 년 동안 대학 홍보 도우미 했쟎아요. 그래서 학교 본부 쪽에 아는 분이 계셔서 좋은 자리를 소개해 주셨어요. 그래 그렇게 고생 하지 않고 용돈 법니다. 고등학교 졸업 한 후 단 한 푼도 집에서 가져다 쓰지 않았습니다. 학교 홍보 도우미 하면 이런저런 활동비가 나오고, 그게 또 새끼 치면 또 다른 대외 활동 같은 걸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벌이가 짭짤합니다. 공부하는 학생이지만, 일단 등록금을 구해야 하니까, 벌이에 눈이 돌아가요. 어쩔 수 없어요. 주변에 친구들 거의 다 그래요. 빵집, 편의점 그런 건 말 할 필요도 없고, 악세사리 가게 점원도 해 봤어요. 사장님은 나오지도 않고, 저 혼자 아침에 가게 문 열고, 밤에 가게 문 닫고 들어가는 일을 하지요. 어떤 유명 메이커 기성복 파는 데서 일을 한 적이 있어요. 너무나 그 옷이 입고 싶어서 그 집을 일부러 택했어요. 입어 보지는 못했지만, 아침마다 마네킹에 입히는 일을 하면서 대리 만족을 했어요. 그렇다고 그렇게 비참하거나 슬프게 생각지는 않았어요. 그 속에서 감사할 부분이 더 많고, 배우는 게 더 많거든요. 그런데 정작 슬픈 적은 있었습니다. 친구가 우연히 가게에 들어오는 거예요. 부잣집 아이죠. 엄마랑 들어와서 옷을 입어보고 사더라구요. 저는 권해주는 입장이고...전, 한 달 월급 해도 못 사는 옷인데...씁쓸하지요. 또 언젠가 초등학교 아이들 학원에서 서무 보는 일을 할 때였습니다. 학원 지출 품목을 본 적이 있는데, 저에 대한 지출이 급여 항목이 아니고 잡급 항목이더군요. 그 땐 참 씁쓸했어요. 인간 취급도 못 받는 거 같아서요. 그래도 이렇게 사는 제 삶이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대학 들어 온 지 1년도 채 안 됐는데 대학 생활이 너무 고달픕니다. 하긴 대학에 대해 그리 큰 기대 했던 것도 아니지만...엄마와 형하고만 살아요. 엄마는 외판원 하시고, 형은 군대 제대하고 돌아 와 공무원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 제 등록금이나 생활비를 벌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근데 등록금 300만원이라는 건 정말 엄청난 액수입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알바로 등록금을 내기는 불가능입니다. 어쩔 도리 없지요. 등록금을 낼 돈이 없어서 학자금 융자를 받았습니다. 지금 1학년이니 두 번 대출 받아 납부했고, 앞으로 졸업할 때까지 대출 받을 거 생각하면 답답하지요. 4년 내내 융자를 받을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빚더미에 앉은 채 사회로 나가야겠지요. 대책이라는 게 뭐 별 거 있습니까? ROTC에 들어갈려구요. ROTC 해서 장교로 복무하고 그 월급으로 저축하면 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월급 꼬박꼬박 다 저축하면 제대할 때, 4년 동안 대출 받은 등록금 빚 대개 거의 갚는다데요. 다 갚지는 못하고 거의 다 갚을 수 있다고 하데요. 그 정도로 큰 빚이지요. 결국 제 젊음은 빚 지고, 빚 갚고 하면서 다 날라 가는 셈이지요. 알바는 현재는 고기집 알바를 합니다. 아는 선배 누나네 가게에서 합니다. 누나가 신경 써줘서 다른 데보다 시급이 좀 세지요. 6000원씩 주십니다. 근데 일 자체가 너무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서 횟수를 좀 줄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일 주일에 토요일 한 번만 합니다. 물론 하루 종일, 밤 늦게까지 하지요. 집에 가면 완전 녹초가 됩니다. 그래도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서, 고생하시는 엄마한테 용돈 달라고 할 수 없어서 토요일 한 번 빡시게 뜁니다. 토요일 하루 벌어서 그 돈으로 일 주일 삽니다. 물론 교통비, 밥 값 정도밖에 못 쓰지요. 나머지 대학 생활 그런 거 욕심 없습니다. 알바로 근근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대학 인생, 빚으로 하는 대학 생활 그 안에 무슨 청춘이고, 낭만이고 그런 게 있겠습니까?



 

제주도를 그냥 떠나고만 싶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누구 집 딸, 누구네 아들, 누구 후배, 누구 선배 하는 그런 전통으로 막힌 관계에 질식할 것 같았어요. 국립대 가면 등록금도 싸고, 집에서 학교에 다니면 돈도 적게 들고 해서 농사 일 하시는 아빠, 엄마에게 덜 미안할 것 같은데, 그래도 떠나고 싶었습니다. 다행이 엄마가 (아빠도 물론이지만) 적극적으로 동의해주셔서 부산으로 올라왔습니다.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취합니다. 아침 밥은 빵, 우유, 계란 등을 먹는데, 너무나 비싸요. 수퍼 가서 살 때 손을 부들부들 떤 게 한 두 번이 아니예요. 피자집에서 일합니다. 시급 정확하게 4320원, 주말에 두 번 하루에 평균 10시간 씩 해봤자 손에 쥔 건 30만원 정도 밖에 안 되는데 그 고생한 걸로 우유 사먹기가 그렇게 겁날 수가 없습니다. 농사 아시쟎아요. 정말로 뼈 빠지게 하는 노동이잖아요. 사람도 써 가면서 하시지만 그래도 일 자체가 너무나 힘들어요. 엄마 아빠 두 분 다 점점 나이는 드시고...등록금 대 주시는 것도 미안해 죽겠는데, 용돈까지 받아 쓸 수는 없어요. 저는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쟎아요,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요. 부모님이 등록금은 대주시니까. 주말만 알바하는 거니깐요. 그래서 사실 등록금 300만원이 얼마나 비싼 건지 피부에 닿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우유값이 왜 이리 비싼 건지가 더 피부에 와 닿아요. 알바 해가지고 번 돈으로 쓰는 게 주로 하루 세 끼 밥값밖에 없습니다. 어쩌다 친구들하고 술 한 잔 간신이 하는 정도. 그런데, 무슨 대학 식당이 그렇게 비싼가요? 서울 어떤 대학에서는 점심값이 1500원이라고요? 무한리필이고요? 여기는 3000원이예요. 학교가 그걸로 돈 벌려나 봐요. 그러니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거지요. 300만 원 등록금 받아 갔으면 학생들에게도 좀 썼으면 합니다. 복지 후생 이런 거 별 기대 안 합니다. 그러니 학교를 그만 두는 학생이 많은 거예요.



 

제가 지금 밴드 하는 거, 교수님, 아시쟎아요? 사실,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고, 제가 음악을 참 좋아해서 그래요. 어렸을 적에 바이올린을 했습니다. 형도 성악을 하고 있고요. 어렸을 적엔 그런대로 잘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거 하고 살았겠지요. 그런데 아이엠에프를 계기로 아버지 사업이 잘 안 되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형은 이미 진로를 바꿀 상황이 아니어서 계속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냥 그만 뒀어요. 그래서 지금도 음악 시디 사 듣고, 밴드 하면서 스트레스 해소 합니다. 등록금은 간신이 부모님이 주시지만, 용돈까지 받아 쓸 수는 없습니다. 군대 갔다 오니 정말 손 벌리기가 어렵대요. 어른이 되어 가는 모양이지요. 1년 정도 햄버거 배달 일 하고 있습니다. 오래 하다 보니 시급도 올라서 저는 시급 4700원 정도 받습니다. 배달 한 건에 400원도 추가로 받고요. 하루에 20~30건 배달을 하는데, 그러면 돈 만 원 추가되는 거지요. 물론 위험하지요. 실제로, 저도 갓길에 주차한 차와 추돌 사고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기절을 하는 바람에 기억을 못해 배상 문제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저희들도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요만, 그 시스템이 문제예요. 교수님이 수업 중에 말씀 하신 이 무한경쟁의 사회, 그것 때문입니다. 이 햄버거 체인은 전국 주문을 한 번에 받아 처리하는 중앙 콜센터가 있어 그곳에서 주문을 받아 각 지점으로 내려줍니다. 중앙 콜센터에서 주문 접수할 때 고객에게 몇 분 내로 간다고 약속을 준 후 각 지점으로 주문을 내립니다. 그 약속을 못 지키면 그 지점은 패널티를 먹고, 그 패널티가 일정 정도가 넘으면 상당한 타격을 줍니다. 그러다보니 모든 부담이 배달원에게 돌아오는 거지요. 그래서 죽기를 각오하고 달리는 겁니다. 비 오고, 눈 오고 그럴 땐 실제로 죽을 거 같다는 생각도 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어떡해요? 달리 방도가 없어요. 대학 졸업 하고 취업 못한 형들이 용돈이라도 벌라고 계속 일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게 되지는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이지요. 취업 공부 하러 그만 둬야겠지만, 당장은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생활비를 부모님께 달라고 해야 하는데, 그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답답하지요. 정말 답이 안 나옵니다. 그래서 깊은 생각 안 하고 삽니다, 그냥.



 

어렸을 적에 아빠가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났습니다. 전 어려서 잘 몰랐고, 커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재기를 하려고 안간힘을 다 썼는데, 아이엠에프가 터져 버려, 또 망했습니다. 빚만 잔뜩 안고...우여곡절 끝에 지금 하시는 고깃집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한 4년 열심히 하신 덕분에 이제 얼추 빚은 다 갚았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대학생이 둘이예요. 연년생 언니가 있어서요. 언니는 공부를 잘 한다고 서울로 보냈어요. 저는 물론이고 언니도 당시엔 집 사정을 몰라서 그냥 그렇게 했지요. 언니는 대학에 들어간 후, 감당도 못하실 거 왜 그러셨냐며 많이 속상해하고 엄마 아빠와 언성을 높이기까지 했어요. 남들은 아빠가 의사고, 판사고 그러던데, 하며 투정 부리는 걸 보면서, 슬프기도 했지만, 짜증났어요. 그런 상황에서, 전 도저히 엄마한테 용돈을 받아 쓸 수가 없어요.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받아 씁니까? 그래서 저희 집에서 알바를 하는 겁니다. 다른 데 가면 시급을 조금 더 쳐준다지만, 그럴 수는 없쟎아요. 고깃집 일이라는 게 정말로 힘들어요. 엄마가 무릎 연골이 다 닳아 두 번이나 수술을 하셨는데, 제가 다른 데 가서 알바 할 수는 없쟎아요. 우리 집이라 다른 알바한테 주는 만큼 주진 않아요. 절반 조금 넘게 주십니다. 그 돈으로 한 때는 옷만 샀어요. 예쁜 옷 사면 얼마나 좋은지. 고민이고 스트레스고 확 날라가 버리지요. 밤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 하다 나온 기분? 뽕하고 다를 바 없다는 교수님 말씀에 동의하지만, 그런 즐거움도 없이 어떻게 살아요? 지금요? 이제는 옷 안 삽니다 ... 철이 조금 들었을까요? 디자인을 참 좋아해요. 예쁜 옷을 사는 것도 다 그런 디자인 좋아하는 것과 관련 있어요.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은데, 여건이 하락질 않쟎아요. 아빠는 일본에 고모가 계시니 그리 가서 알바 하면서 공부하면 되지 않겠냐고 하시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요. 고깃집 알바 쉽게 구해지지도 않고, 엄마 무릎 생각하면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아버지하고 엄마가 동네에서 조그마한 수퍼를 운영하십니다. 근데 집 안에 대학생이 둘이예요. 작년 12월에 형이 군 제대를 하고 복학하였는데, 제가 아직 영장이 안 나오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한 학기 등록금 700만원, 수퍼 해서 감당하기 너무나 어렵습니다. 엄마는 그런 걱정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시는데, 집 상황 빤히 알쟎아요. 엄마한테 용돈을 달라고 어떻게 손을 벌릴 수 있겠습니까? 나이가 스물이 넘었는데...그래 고등학교 졸업 하자 마자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형도 마찬가지예요. 경호업체에서 알바 합니다. 형이나 저나, 별의 별 것 다 해봤습니다. 제일 힘든 건, 터널 청소였습니다. 걸레를 높이 쳐든 채 2km를 가야 합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입니다. 돈벌이는 조금 된다지만, 힘들어서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단란주점 서비스 일 합니다. 평일에는 11시 혹은 새벽 1시까지 하고, 주말에는 밤샘 합니다. 시작하는 시간이나 끝나는 시간이 일정하지는 않아요, 손님이 많으면 더 일찍 가기도 하고, 더 늦게 오기도 합니다. 일을 많이 하는 날은 시급 4900 정도로 계산해서 주고, 그렇지 않는 날은 4700원 정도로 계산해 줍니다. 이 고생을 해도 손에 쥐는 건 얼마 되지 않아요. 대학생 인건비가 참 싸구려지요. 군대 가기 전까지만 하는 것이라 마음 먹으면 속이 좀 편하지만, 그래도 대학생으로선 참 못할 일입니다.  근데 군대 갔다 오면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요? 군대 갔다 와서는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든지, 학교 때려 치우든지 할 생각입니다. 근데 때려 치우는 건 어렵지 않은데, 맘 먹고 공부 하는 건 쉽지 않아요. 우리 같은 처지에 그 등록금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학교에서는 교수님들보고 학생들 자퇴 안하게 지도 하라고 압력 넣는다면서요? 그럼 우리는 손님이 되는 겁니까? 제가 일 하는 단란주점에 오는 손님이요.



 

언젠가 아빠가 그러셨어요. 가난해서 미안하다고, 부잣집에 네가 태어났더라면 니가 이렇게 고생하지 않을 텐데...괜챦아요 그랬지만 눈물은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또 언젠가 엄마도 그러셨어요. 네 동생만 챙겨줘서 미안하구나 라구요. 더 많이 울었어요. 이젠 다 괜챦지만, 어렸을 땐 참 많이 속상했고, 많이 울었습니다. 아빠는 회사가 부도 나고 한 동안 집에 계셨습니다. 이제 다시 사업 시작 하시러 저 멀리 다른 고장으로 일 나가십니다. 힘드실 텐데...엄마도 날마다 밤 늦게까지 허드렛일 하십니다. 동생은 저보다 공부 잘 한다고 해서 서울에서 재수 하고 있어요. 연년생 남동생이예요. 지라고 안 힘들겠어요? 그래도 지는 뭐 사달라고 엄마한테 조르기도 해요. 한 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전 시급 4320원, 현재는 일 주일에 세 번 뜁니다. 그래서 주말이 없어요. 친구들하고 놀러 가지도 못해요. 죽어라 일하고 그 돈 못 쓰지요. 그 피같은 돈 꼭 필요한 것만 써야지요. 같은 알바 하면서 그 돈으로 옷 사고, 술 마시고 펑펑 쓰는 애들 보면 부럽기도 하곤 했지만 ... 주말엔 그래서 그냥 집에 있어요. 집에 있다고 해서 공부하는 게 아니예요, 공부도 안 돼요. 맨 날 일만 하니 맘이 부웅 떠 있어서 그런 가 봐요. 알바 끝나고 집에 오면 새벽 1시 되는 때가 태반입니다. 공부하려고 알람 예약해놓고, 제대로 일어난 적이 없어요. 눈이 떠지질 않고, 몸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어요. 앞 날 걱정이 태산 같은데...대학 등록금 너무 비싸요. 수업도 좋은 수업도 있지만, 저건 아닌데 하는 정말 엉망인 수업도 많아요. 근데 등록금은 정말 미친 등록금이지요.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데, 어떡 하겠어요? 대학 등록금 비싼 줄 알면 더 공부 열심히 하라지만, 사실 그게 말 같이 그리 쉽지만은 않아요. 그게 우리네 현실입니다.



 

저도 어렸을 적엔 잘 살았어요. 아버지 사업이 잘 됐는데, 아이엠에프 때 망했어요. 아버지는 쓰러지시고, 지금까지 투병 중이세요. 어머니가 동네에 조그마한 치킨집을 차리셨습니다. 자식이라곤 저 혼자라 가게에서 나온 돈으로 등록금은 대 주실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데, 제 양심에 기숙사비하고 생활비는 벌어야 할 거 같아서 알바를 합니다. 그래, 전 시급 4320 짜리 같은 건 안 합니다. 한 방에 많이 벌어야 하니까요. 주로 용역업체에 나갑니다. 새벽에 용역 사무실에 나가 대기하고 있으면 별의 별 일감이 다 들어 옵니다. 공장에도 나갔는데, 손가락 잘린 사람도 여럿 봤습니다. 납기를 맞춰야 한다고 통 사정을 하길래, 저도 돈도 좀 필요하고 해서 잠 안 자고 꼬박 24시간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도 잠이 와서 화장실 가서 변기통 위에서 5분 정도 자고 온 적도 있어요. 노동자 파업 현장도 가봤습니다. 노동자들 두들겨 패는 건 전문 깡패들이 하는 일이고 저같은 대학생 알바는 그냥 서 있기만 합니다. 노동자들한테는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저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사회가 저를 정당하게 챙겨 주지 않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 어떻게 삽니까? 아파트 재개발 반대 회의에도 가봤어요, 깽판 치고 판 깨버리는 그런 일이지요. 그런저런 일 하면서 돈 벌면 일당 10만 원도 떨어질 때도 있어요. 그래서 전 대학생 인력이 그렇게 싸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노가다 해 가지고 이 정도 벌면 되지요. 노가다는 다 제가 고등학교 때 공부 안 해서 당연한 거겠지요. 교수님은 제 탓이 아니고 사회 구조 탓이라고 수업 중에 자꾸 이야기 하시지만, 저는 아무리 그래도 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 친구들도 다 마찬가지예요. 신자유주의 그런 거 이해를 못하지는 않지만, 공감하지는 않아요.



 

아버지가 안 계십니다. 엄마하고 누나 둘 하고 저하고 네 식구 살다가, 큰 누나는 시집 갔어요. 공무원이라 집에 어느 정도 보탬을 줍니다. 누나도 누나지만 매형이 고맙지요. 군 제대 하고 2년 간 복학을 하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살림에 대학을 계속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서요. 작은 누나가 교사 시험 준비를 해야 해서 집에 돈 벌 사람은 저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어엿한 선생님이 되었어요. 전, 고졸로 어떤 무역회사엘 취직했는데, 배운 게 없다보니 그냥 단순한 노가다 일만 했습니다. 장래가 보이지 않더군요. 그래, 다시 복학했습니다. 작은 누나가 자기 때문에 제가 공부하는 시기를 놓쳤다고 이제 자기가 도와줄 테니 알바 하지 말고 공부하라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수업 끝나고 바로 호프집으로 가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방과 후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이런 거밖에 없어요. 시급 4500원 ... 법정 기준 4320원에 180원 더 주지요. 그래 봤자 한 달에 60만원도 못 법니다. 간신이 제 용돈 쓰고, 저축 조금 하지요. 등록금이요? 이렇게 벌어 등록금은 택도 없습니다. 등록금은 방학 때 아침부터 하루 종일 바짝 일해서 마련해야지요. 지금 중간고사 기간인데 ... 어쩔 수 없어요.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손님 없을 때 메모 해 놓은 거 틈틈이 외웁니다. 근데, 학기 중이든, 방학이든 맘 먹고 길게 공부할 시간이 없습니다. 영어 공부를 좀 해야 하는데, 맘 먹고 두어달만 하면 된다면서요. 교수님이 따로 과외를 해주신다 해도 시간을 뺄 수가 없어요. 결국 대한민국 최고급 대학생 인력이 시간 당 4320원에 등록금 300만 원이라는 현실은 거대한 빙벽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이렇게 사는 게 우리 삶이라 절망이나 좌절해 본 적은 없습니다. 딱히 큰 희망도 없지만요.



 

Posted by 싫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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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1.11.26 02:00 [ ADDR : EDIT/ DEL : REPLY ]

85개의 852011. 11. 11. 18:41



그날의 8시 5분,  한진중공업 복직 대기자 아내의 이야기  '


"  여기 이렇게 저희를 에워싸고 있는 경찰분들도 저희들이 잘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알꺼라고 믿습니다. 그들 경찰은 어쩔 수 없이 시키는대로 하지만, 저희들이 하는 일이 사람을 살려내고, 억울하게 일하던 우리 남편들을 구해내는 일이라는 걸 이들도 알 것 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들도 지금은 저희들을 향해서 방패로 막고있지만, 저 마음속에는 저희들을 향해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

 
_ 임태훈

Posted by 싫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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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1. 11. 11. 18:37


- 안동 일직면 조탑리에 있는 고 권정생 선생댁 앞에 놓인 방명록에 85번째로 남긴 아이의 글이 참 소박합니다.

아이는 이런 글을 적었습니다.

"바보 정생씨 안녕. 정말 소박하셨네요. 행동은 부자같으시고요."


_ 정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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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개의 852011. 11. 1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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